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01년 9·11 테러를 당하자 9일 후 부시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3주후 백악관은 알카에다가 러시아에서 훔친 10킬로톤짜리 핵폭탄을 뉴욕에 밀반입했다는 정보보고서를 놓고 또 다시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사태는 곧 진정되었지만 이렇듯 테러는 정책의 우선목표를 바꾸기도 하고, 한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한다.
 
  2월 27일 아프간니스탄에서 윤장호 병장이 탈리반의 폭탄테러로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우리를 전율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이럴 때일수록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재발방지를 위한 침착함과 냉정함이 아닌가 싶다.
 
  테러가 당시 미군기지에 체류 중이던 딕 체니 미 부통령을 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도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현지의 여건은 그렇지 않다. 우선 탈리반의 재부상을 주목해야 한다. 탈리반은 2001년 10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의해 축출되었지만 현재 급속한 재건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3년 이라크전쟁 시작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전력의 상당부분을 이라크와 후세인 체포에 투입함으로써 탈리반 잔당에게 시간을 허용한 미국의 정책도 문제였지만, 지속되는 경제난과 관료조직의 부패도 탈레반의 재기에 기여하고 있다.
 
  2005년부터 게릴라 전투와 자살폭탄공격이 급증하고 있으며, 2006년 동안 발생한 사망자는 4천여 명 중에는 200여명의 다국적군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과 영국이 다급하게 증원군을 보내기로 했지만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군이 무차별적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둘째, 중동전체의 분위기도 반미·반서방·반다국적군 테러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미군의 이라크 안정화 작전이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1만 2천명의 추가파병을 결정했고, 농축활동 포기를 거부하는 이란과 미국 간의 대결도 악화되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 추가 항모를 파견한 가운데 미국 또는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통해 이란 핵시설들을 파괴할 것이라는 소문도 그치지 않는다. 체니 부통령이 오만(25일), 파키스탄(26일), 아프가니스탄(27일) 등 이란을 둘러싼 이근국가들을 연거푸 방문하고 있는 것을 군사행동을 위한 사전협의로 보는 관측도 있다.
 
  그런 중에도 테러세력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집힌 동안 도주와 은신에 성공한 빈 라덴이 알카에다 조직을 추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4천 200여기의 시리아제 및 이란제 미사일을 퍼부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헤즈볼라도 재무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병장의 희생은 국내에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소지를 안고 있다. 이라크의 자이툰부대를 위시한 위험지역에 나가있는 장병들을 조속히 철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개연성은 물론, 이스라엘-헤즈볼라 간의 휴전을 감시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의 일환으로 7월까지 350명의 특전사 요원을 보내기로 한 결정을 재고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우리 장병의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해외파병은 종합적인 국익판단에 따른 것이므로 포풀리스트적인 외침들이 담론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군대의 해외파견이나 철수는 외교, 동맹, 경제적 유리점, 국가간의 약속 등을 두루 감안한 결정이어야 하기에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국제적 약속은 가급적 준수되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일정수준의 협력을 제공하는 문제도 그렇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테러문제를 전 세계가 대처해야할 지구촌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동참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위험은 언제든 수반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3천여 명에 달하는 해외파견 장병들에 대한 안전조치를 크게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계는 1988년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이 팬암항공 103편을 폭파하여 수백 명의 탑승객을 몰살시키는 것을 보았고, 2000년 알카에다가 미국 군함 콜(USS Cole)호를 폭파하는 것을 목도했으며, 2002년 제마이슬라미야라가 발리섬의 나이트클럽을 폭파하여 무참히 민간인들을 죽이는 것도 지켜보았다. 테러는 군인, 민간인, 함정, 항공기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이라크 자이툰부대의 평화재건 활동,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의 건설활동, 동의부대의 의료활동 등도 당연히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쿠웨이트 다이만부대의 항공기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에 근무 중인 우리 장병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