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천주교회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평신도들이 자체 힘과 열정으로 신앙을 들여와서 생성 발전시킨 교회입니다. 이벽 세례자요한, 정약전 안드레아, 정약용 사도요한, 이승훈 베드로 등이 1779년부터 천진암 강학회를 만들어 천주학에 대하여 활발히 토론하였고,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 받고 성경, 십자가 등의 성물, 성경 등을 들여옴으로써 한국천주교회가 생성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이듬해인 1785년 명례방사건이라하여 김범우 안토니오의 집에서 미사등의 회합을 갖다가 적발되어 을사박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금년 2025년은 60갑자에서 을사년에 해당하며 을사년은 한국교회로 보아 특별한 해입니다. 240년전 1785년 을사박해때, 형조는 신앙선조들을 체포하였으나 이벽, 이승훈, 정약전·약종·약용 삼형제 등 양반들은 모두 석방하고 중인인 김범우 안토니오만 장형에 처한뒤 경남 밀양으로 귀양가게 됩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귀양지에서 2년후 목숨을 잃는데 그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중 한명입니다. 사제가 없었음에도 미사가 가능하였던 것은 가성직(假聖職) 제도때문이었고 이는 후에 오류로 밝혀집니다. 그후 북경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문의한 결과 가성직 제도가 잘못된 것임을 밝혀내고, 사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게 되며, 1795년 주문모 중국인 신부에 의해 가회동에서 처음으로 사제가 주례하는 미사가 집전됩니다. 그리고 180년전1845년, 을사년에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었으나, 1년 뒤 병오박해 당시 사목의 꿈도 활짝 피워보지 못한채 순교하게 됩니다. 

이처럼 평신도의 열정적인 신앙으로 교회가 출범하였으나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 묻힌 5명의 성조 (이벽 세례자 요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권철신 암브로시오,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승훈 베드로) 중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만이 복자의 품에 올랐을 뿐 다른 4명은 복자나 성인 품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 사제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뒤,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서 마침내 기록이 제대로 이루어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록의 오류나 초기 신앙선조에 대한 왜곡된 서술이 그 원인인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승훈은 1801년 참수, 순교하였으나 배교하였다고 ‘한국천주교회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벽 성조도 명례방 사건으로 연금상태가 되자 단식 순교하였으며, 권철신·일신 형제도 귀양가는 길에 고문 후유증으로 순교하거나, 옥중에서 고문으로 순교했습니다. 우리 후손의 기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루카 14,25-33)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부모, 아내와 자녀,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가족보다도 주님만을 생각하며 순교한 위대한 성인의 예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부모,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복자 이성례 마리아 부부를 들 수 있습니다. 최경환 성인은 1939년 8월에 체포되어 주님을 용감하게 증언하며 고문과 장형에 맞선끝에 결국 수백대의 매를 맞고 옥사하게 됩니다.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당시 신학생으로 선정되어 마카오로 공부하러 떠난 양업(토마스)말고도 희정(야고보 15세), 선정 (안드레아 12세), 우정(바실리오 9세), 신정(델레시포로 6세)과 젖먹이 세 살짜리 스데파노까지 다섯 아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들과 격리되어 여감방에 젖먹이와 함께 수감되었습니다. 살이 너덜너덜 찢어지고 팔다리가 부러지는 고문에도 그녀는 의연하게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옥살이가 계속되며 남편 최경환이 극도의 고문으로 죽고 젖먹이마저 굶주림에 축 늘어져 눕게되자 그녀는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마음이 약해졌고 배교한다는 말을 한 다음 아이들과 함께 풀려나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관아에 자수합니다. 이어서 맏아들 최양업이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탄로나 상급기관인 형조로 이송되고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여기서 그녀의 젖먹이 아들 스데파노가 굶주림끝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죽기전에 아이들에게 “이제 다들 가거라. 절대로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잊지 말아라. 서로 화목하게 살며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맏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라.”고 타일렀습니다. (후일 이 간절한 원망(願望)을 지켜 최양업 신부는 귀국하여 2년 동안을 동생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당고개에서 다른 6명의 증거자들과 함께 빛나는 순교의 월계관을 썼습니다. (한수산 크리소스토모 著 ‘꽃보다 아름다워라, 그 이름’ 364쪽-365쪽)

저희는 이제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현세적 즐거움에 빠져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밑거름이 되신 순교자들이 겪은 처절한 고난과 위대한 희생을 잊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진암 성지를 뒤덮고 있는 러브호텔과 각종 무질서한 음식점이 그 예입니다. 비록 우리가 현세적 즐거움을 전적으로 외면할 수 없다하더라도 신앙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025년 9월 7일 순교자 성월 첫주일에 김원율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