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월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정하상 바오로 및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한편으로 신자들의 보다 많은 참여를 위하여 주일로 옮겨 대축일을 경축(慶祝)하기도 합니다. 순교자 대축일을 맞이하여 저는 한국 천주교회에 대하여 이는 참으로 경이(驚異)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200여년 전 조선은 문을 꽁꽁 닫아걸고 지극히 폐쇄적인 쇄국정책을 시행하였고, 우리 선조들은 인근의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르게, 서구의 문물과 교류하거나 받아들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종교라면 부처를 섬기는 불교나 공자와 맹자에 경도된 유교사상 이외에는 일체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조들은 스스로 천주학을 공부하여 이를 영생(永生)의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만난을 무릅쓰고 중국에 있는 주교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제를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신앙 선조들은 박해의 광풍 속에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으로 하여금 갖은 조롱과 멸시를 겪게 하며, 고문을 당하여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며, 목마름과 굶주림의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순교하였습니다. 이처럼 처절한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순교하신 그 위대한 열정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우리 민족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굽어살피소서!’,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하늘에 계시는 분께서 인간사를 주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선량하고 순박한 우리 조상들의 마음에 하늘의 도리가 곧 인간의 도리라고 하는 생각이 자연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기해박해 중 잡혀가기 전에 우의정 이지연에게 보낸 상재상서(上宰上書)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호교론(護敎論)을 펼쳤습니다. 서울대교구 가락동 성당의 주보성인은 정하상 바오로 성인입니다. 성전 입구에는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상재상서가 한글로 씌어져 벽에 걸려 있습니다.
제가 전에 가락동 성당을 다닐 때, 주임신부님께서 미국에서 교포사목 중에 중국인 신부를 만났는데, 그분 말씀이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존경한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깜짝 놀라 성인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인 신부가 자기가 신학교에서 교리공부할 때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상재상서로 공부하였다고 했습니다. (상재상서의 원문은 한문(漢文)으로 씌여졌습니다) 이처럼 상재상서는 그 논리의 정연함과 천주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존경이 한글자 한글자 마다 새겨진 탁월한 천주존재에 대한 교리입니다. 상재상서에 의하면 천주가 존재하는 이유로 첫째 만물, 둘째 양지(良知), 셋째 성경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양지를 왜 천주존재의 증거로 이야기했을까요?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만약 백주대낮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번개와 천둥이 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두려워 눈을 크게 뜨고 오금을 저리며 몸둘 바를 몰라 하며, 이로서 상벌과 선악을 주관하시는 분이 사람의 마음과 머리 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 민간에 살고 있는 사내며 아낙들도 아주 화급하고 위급한 처지나 비통하고 억울한 때를 당하면 반드시 “하늘이시여!”하고 부르며 하소연하니, 이는 그 본래의 마음과 타고난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섬기며 두려워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뿐입니다. 이래서 양지(良知)를 통해 천주께서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양지(良知)라 함은 무의식(無意識)의 세계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M. 스캇 펙(M. Scott Peck)에 의하면 이러한 무의식이 바로 하느님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그는 의식적으로 학습되지 않은 지식을 인간의 무의식이 소유하게 된 것, 즉 무의식에 의하여 하느님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원래부터 크리스챤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여러 해동안 연구한 결과 무의식이 지식을 갖게 된 것은 하느님이라는 가설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학습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던 하느님을 향해 신앙의 열정이 뜨겁게 솟아나 순교한 우리의 신앙 선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마태 5,3) 이를 중국의 성경은 ‘허심적인 유복료’(虛心的人 有福了)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는 마음이 비어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무의식의 세계, 하느님이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는 의식이 무의식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의 갈채를 추구하는 세속적 욕구라는 의식이 하느님이 존재하시는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육적 쾌락에 몸을 내맡기는 사랑없는 생활에 우리의 의식이 지배당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103위 순교성인들의 대축일에 우리는 오직 주님을 위한 열정에 불탔던 신앙선조들을 본받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025. 9. 20. 103위 한국 순교자 성인 대축일에 김원율 안드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