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 해 전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쓴 ‘사해 부근에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예루살렘의 어느 초라한 호텔에서 ‘도다’라는 가톨릭 계 대학시절의 친구를 만나는 데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나약한 믿음에 대하여 언제나 회의를 느꼈지만, 이에 비하여 학창시절의 도다는 믿음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 삐걱거리는 기숙사의 문을 열고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만난 도다는 어느 새 몰라보게 늙어 있었고 신앙생활에도 회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서학을 공부하며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행적을 추적합니다. 이미 예수 당시의 유적은 후일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그 후 새로이 예루살렘이 건설되었을 뿐 지금의 성지는 모두 가짜였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의 회의가 가득한 모습에는 비웃음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해부근에서’ 책에서 도다가 추적한 예수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전개됩니다.

갈릴레아 근처의 호숫가, 막달라, 가파르나움, 벳사이다는 언제나 가난과 병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비참과 가난이 없는 인생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갈릴레아 호숫가 주민들은 남쪽에서 메시아가 나타나리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 사람은 남쪽의 나자렛과 가나를 지나 이 호수의 동쪽에 있는 마아잔산에서 내려올 것인데 그 때에는 절름발이는 걷게 되고 과부는 위로받으며, 오래 동안 하혈하던 여자는 치유되고 숨이 끊어진 아이는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이었다.

안드레아는 가축을 사기 위해 벳스안에 가는 도중 한 사나이와 동행하게 되었다. 사나이는 어린 딸을 나귀에 태우고 가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맹인이었다. 그 사나이는 유대광야에서 활약 중인 요한 교단에 속하는 랍비 예수가 사마리아 지방에 나타나서 가난한 사람을 위로하고 병자를 고쳐주며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고 말한다. 그에게 매혹되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그를 구세주로 믿어 고향도 버리고 제자로 나선 이도 있다고 했다.

양털같이 보드라운 뭉개구름이 구릉 위에 떠 있는 어느 봄날 오후 안드레아는 마침내 예수를 만났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예수는 볼이 홀쭉하고 눈도 꺼져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 모여있는 노인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에는 형용할 수 없이 부드러운 빛이 감돌았다.

예수의 이야기는 바리사이파의 랍비나 짐승가죽을 두른 예언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랍비나 예언자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책망하고 하느님의 분노와 벌의 무서움을 웅변조로 쏟아놓아 군중들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예수는 그런 말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예수는 하느님도 쓸쓸하시다고 했다. 하느님은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구하듯이 인간의 사랑을 바란다고 했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험준한 황야에 숨어계신 것이 아니라 불행한 자가 흘리는 눈물과 버림받은 여인의 고통 중에 함께 계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예수의 곁에서 아이들은 뛰고 떠들고 있었다. 예수는 설교를 마치고 호수 건너편의 달다라 협곡을 향해 갔다. 그기에서 계곡에서 살고 있는 나병환자들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였다. 일반인은 그 계곡에 사는 나병환자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어느 날 예수 일행이 배를 타고와 막달라 호숫가에 내렸을 때 한 절름발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우는 소리로 외쳐댔다. “나는 이런 몸입니다. 오래 전에 힘을 잃어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쳐주십시오. 제발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무 움직임도 없이 절름발이를 보던 예수는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일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고통을…”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은 절름발이의 울음소리에 지워지고 말았다. 안드레아는 형용할 수 없는 환멸감을 맛보았으나 아직 예수의 힘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어떤 마을에서도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노인의 머리맡에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곁에서 조용히 앉아 있기도 하고 맹인 노파의 손을 잡아주기는 했으나 그들을 살리거나 낫게 하는 일은 없었다. 안드레아는 나병환자의 계곡에 간 적이 있었으나 그들의 생활은 변한 것이 없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없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달다라 협곡은 그대로 천형의 땅이었다.

안드레아는 실망하였다. 예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었다. 안드레아가 갈릴레아로 돌아와서 얼마되지않아 전염병이 돌았다. 안드레아의 아이가 어느 날 열이 오르고 구토를 했다. 아이는 얼마 가지 않아 약조차 넘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드레아는 예수에게 간다. “스승님 제 아이를 구해주십시오.” “제게 기적을 원합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왜 하느님은 이 아이를 데려가시는 겁니까?”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 아이의 순결함도, 당신의 슬픔도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는 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안드레아의 손을 잡았다. 안드레아의 아이는 숨을 거두었다.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 예수는 갈릴레아에서 사람들에게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제자는 말했다. “이 분은 당신들을 사랑했습니다. 당신들과 함께 당신들의 고통을 나누려 했습니다.”

과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모이기 시작한다. 한때 100여명에 달했던 예수의 제자도 열 명으로 줄게 되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려 하는 예수를 말린다. “왜 예루살렘에 가셔야 합니까? 그 곳은 위험합니다.” “내가 왜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지는 과월절이 끝날 때 알게 될 것이다.”

거대한 성전을 배경으로 예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 자리에 그대로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질 것이다.” “하느님에게 성전이 무엇인가? 당신들이 경멸하는 창녀들이 자신의 비참함을 울며 지새웠다면 하느님은 이 성전보다 그녀의 한 방울의 눈물을 택할 것이다. 하느님은 성전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을 원하신다.” 그 때에 랍비 두 사람이 광장을 가로 질러 달려나온다. “여러분은 저자의 말을 들었소. 성전을 모독하는 말을…”  “의회는 그를 이대로 두지 않을 것이오. 저자를 따르는 사람도 똑같이 벌을 받을 것이오.”

도다는 또한 학창 시절 ‘쥐’라는 별명을 가진 소심한 폴란드 계 유대인 수사의 행적을 추적합니다. 이 유대인 수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실에 끌려갈때 그의 마지막을 본 사람은 증언합니다. “그가 오줌을 싸면서 다리를 절며 가스실로 항할 때 분명히 또 한분이 그와 똑같이 다리를 절며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백합니다. “당신은 무력했고 그 무력함 때문에 나자렛에서 쫓겨났으며, 갈릴레아에서도 여러 마을에서 박대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예루살렘 마을에서 매도당하고 잡히셨으며 당신의 고통의 기쁨으로 많은 사람의 슬픔을 씻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쥐 옆에서 그가 끌려가는 순간 따라가면서 그와 당신의 운명을 닮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가 당신의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표시인지도 모릅니다.”

엔도 슈사쿠가 지은 “사해부근에서”에서 라는 책은 신학적으로 논쟁의 소지가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학적인 논쟁 이전에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보면 갈릴레아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기적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서 상의 그리스도의 기적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스스로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겠다고 날뛰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정의를 입에 올리며 유신독재로의 회귀, 또는 재벌독재를 입에 올리는 사제들이 갈릴레아에서 예수님의 기적을 요구하던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현세에서 유다 땅에서 로마 군대를 몰아내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이 종종 지옥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며 기적에 집착하는 인간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같이 고통을 나누고자 했기 때문에 그를 주님으로 따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졌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를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참된 평화를 위한 인내와 고통을 감내함이 없이, 터럭만큼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사람들이 평화, 정의를 입에 올리면서 끊임없이 분탕질을 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12월의 어느 날 평일미사에서 필자는 가락동 성당의 주임신부님이 하시는 강론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 분의 평신도가 신부님을 찾아와서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신부님께 호소하면서 위로받기를 청하였습니다. “신부님, 저는 은행 지점장으로 은퇴한 후 이런 저런 일에 손대었지만 실패해서 지금은 제가 가진 유일한 재산인 집마저 처분해야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저는 그동안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였고 오로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만, 지금 저는 너무나 힘듭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신부님은 청빈한 삶을 사시는 분으로서 그분을 재정적으로 도울 만한 여력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신부님은 나자렛 예수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자들의 손을 잡고 아픔을 함께 하였듯이 그분 손을 잡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신부님이 너무나 슬퍼하시는 것을 본 그 신자는 오히려 신부님을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신부님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도움이 있겠지요.” 그분은 신부님의 눈물에서 자식잃은 과부, 죽어가는 제자의 자식들의 손을 어루 만지면서 함께 눈물흘렸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천주교인인 우리는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과 같이 고통을 나누는 것,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가는 것일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회에는 자신이 예언자가 되고 하느님이 되고 메시아가 되려고 하는 신부님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호하면서 주변에 몰려들어야 할 신자들이 오히려 이러한 사제들에 대한 비웃음과 멸시를 간직한 채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가락지구 본당의 이 신부님이 바로 우리 신자들이 원하는 오늘의 아기 예수님이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희망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까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예수님은 현실에서 정치적인 해답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희망안에서 주님이신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신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Spe Salvi) 우리에게는 진정 어떤 사제가 필요합니까?

 

엔도 슈사쿠라는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자 하였을까요? 십자가 상에서 한없이 무력하게 돌아가셨던 예수님께 2천년이 지난 지금 20억 가까운 인류가 그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십자가 상에서 그분은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약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이 되고 메시아가 되고 예언자가 되어 대통령마저 물러나게 하면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한참 허파에 바람들어간 사제들이 이나라를 어지럽히고 예수님의 본래의 모습을 어그러뜨리는 것은 아닌지 그들 가슴에 손을 얹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