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제 학교 후배중에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그는 어느날 술자리에서 자신이 삼위일체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모시는 하느님, 즉 우리의 주(主)님, 자신의 부인인 주(朱)OO자매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주(酒)님, 이 세가지를 한마음으로 사랑하니 자신이야말로 삼위일체의 삶을 살고있지 않은가?’ 라고해서 저도 가볍게 웃어넘겼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이 이야기에도 삼위일체가 지향하는 바가 숨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술이 주는 의미는 사회적 유대와 일체감의 고양(高揚)입니다. 술은 같은 자리에 있는 참석자들에게 친교(親交)의 자리를 제공하며, 더불어 일체감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부인에 대한 사랑도 역시 일체감을 높이는 것입니다.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의 관계라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한마음 한몸이 돤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틀어지고 미움과 불신이 쌓이게 되면 몸과 마음이 멀어지고 완전히 남남이 됩니다. 우리 신자들과 하느님의 관계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성인들은 모두 하느님과 저 높은 곳에서 일치를 이루셨던 분입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였고 (신명기 6,5) 하느님 사랑을 이웃사랑으로 구체화하여 실천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지옥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사(餓死)방에 지명받은 한 죄수를 대신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몸소 실천한 위대한 성인이셨습니다. 

천주교의 4대교리라 하면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 4가지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삼위일체(三位一體)교리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3위를 우리같은 평신도가 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바닷물 한컵을 떠다놓고 대양(大洋)의 광활함과 신비를 말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페소, 칼케돈, 4대 공의회를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논쟁과 이단(異端)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며 확립되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확정되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성령이 삼위(三位)의 위격에 포함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성령이란 단지 성부와 성자의 속성에 불과하다는 성령 적대론자들이 존재하였고 이에 대한 반박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추인(追認)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personae)과 한 실체(substantia)로서의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론이 확립되었습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가지지만 한 위격이라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단성설이 이단으로 단죄되었으며,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그리스도교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위와 같이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약 이백년간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난 신학적 논쟁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학파, 안티오키아 학파 등의 주교들이 싸움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복잡한 신학논쟁을 싫어하여 매번 교황대사를 파견하면서 “제발 가급적이면 신학적인 논쟁에 끼어들지 말고 중재만 잘하시오.”라고 충고했습니다. 특히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님의 호칭을 두고 이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선동과 폭력이 난무하였습니다. 성모님의 호칭을 두고 분란이 일어났던 이유는 이 논쟁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쟁이 문제가 된 이유는 논쟁당사자들이 교리의 본질, 즉 하느님의 사랑을 잊고 상대를 나의 주장으로 눌러 자신의 영적 교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본 모습, 일치와 사랑은 실종되고 분열과 불신만이 논쟁의 장을 뒤덮었습니다. 성령의 힘은 절제와 일치된 모습이며 악령의 지향하는 바는 분열과 증오입니다. 주교들이 일부이지만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은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일치의 정신과 심각하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이를 신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리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이 글의 처음에 후배 이야기를 하였듯이 삼위일체의 정신은 사랑과 일치라는 것을 가볍게 언급하고 매듭짓는 것이 복잡한 신학적 설명에 매달리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자신의 외아드님, 독생성자(獨生聖子)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요한 3,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으면 되고 이를 믿는 사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입니다. (요한 5,24) 우리는 삼위일체를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천주성부(天主聖父)의 아드님임을 믿으면 이로써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입니다. 

2025. 6. 15.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에 김원율 안드레아